이 글은 2008년 무렵 대학교 논술 시험을 어떻게 하면 잘 볼 수 있는지 정리했던 글이다. 글의 논지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인터넷 시대에 글 쓰는 방식으로 변형한다면 나름 지금도 통용될 만한 내용이다.
논술을 잘 쓰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야흐로 대학입학의 시즌에 맞추어 이런 글을 미리미리 써두면 지나가던 고3, 재수생, 삼수생, 사수생 등등 전국각지의 수험생이 보고
조금이라도 참고를 했을 텐데 새삼 뒷북질을 하는 셈이라서 미안코 또 미안타만 어쨌든 내 맘대로 내 블로그니까, 시간이 안 맞았음을 안타까워할 뿐.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다름이 아니라, '글을 잘 쓰는 것'과 '논술을 잘 쓰는 것'은 아예 다르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꾸준히 책을 읽고, 신문과 뉴스, 영화, 잡지 등 여러 매체를 접하면서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을 생활화한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논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된 후에, 이를 바탕으로 글을 쓰면 된다. 물론 이 정도가 되려면 10년쯤 걸린다는 것 때문에 어려울 뿐이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논술을 잘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방향이다.
글을 잘 쓴다고 해서 논술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논술을 잘 쓰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다. 논술은 '시험'의 영역이고 '스킬'의 영역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글을 다시 정리하다 보니 이게 블로그 글을 잘 쓰는 방법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블로그 글을 쓰는 분들도 참고해 두면 좋을 것 같다.
논술점수를 높이는 현실적인 4대장
실질적으로 논술점수를 높이는 현실적인 방법 4가지가 있다.
- 깔끔한 글씨체
- 표준어법 익히기
- 글을 읽을 줄 아는 능력
- 숫자를 세는 능력
어이없게도, 글을 쓰는 능력보다 이 네 가지가 논술점수를 가장 빠르게 높여주는 방법이 된다. 이 네 가지 스킬이 왜 논술점수를 높이는지 알고 싶다면, 대학교의 논술시험 채점과정을 살펴보면 된다.
논술시험의 채점과정
논술의 채점과정은 수험생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허술하게 구성되어 있다. 지금보다 더 크게 정시모집을 진행했던 예전 대학입학처에서는 논술고사 채점을 학교의 근로학생들을 고용하여 채점했다. 물론 그들이 점수를 매기는 것은 아니고, '분류'를 하는 역할을 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논술고사를 보고서 B4용지에 정리한 답안지를 무더기로 뿌려놓고 가는 상황에서, 누가 그걸 하나씩 읽어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고용된 학생들은 쌓여있는 답안지 중에서 글씨 분량을 기준으로 과감하게 쳐낸다. 소위 말하는 '계량적인 판단'이 가능한 분량미달과 분량초과를 모두 쳐낸다. 그러면 정해진 글자수를 넘어가지 않는 '정상부류'가 남게 된다.
이 정상부류의 글을 읽어보게 되는데, 여기서도 사람들이 채점을 하다 보니 알아보지 못하는 필체의 글씨는 빠르게 넘겨버리게 된다. 아무래도 인간이 채점하는데서 오는 한계다.
그리고 이렇게 필터링이 되고 나면 적정 분량을 작성한 가독성이 있는 답지들이 남게 된다. 그렇다면 이 논술시험에서 점수는 어떻게 매길까? 그저 심사위원 마음대로 점수를 준다면, 심사위원의 관대함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학교 측의 입장에서도 근거자료를 남기며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이 방법을 쓴다. 바로 '득점어휘' 또는 '득점표현'이다.
블로그에서 이야기하는 '키워드'와 똑같은 원리다. 즉, 논술고사의 채점자/채점알바가 검색엔진이라고 생각을 하면 편하다. 그나마 프로그램이라 글씨체를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금 더 좋다고 봐야 하려나?
즉, 논술고사의 수많은 답지들은 필터링을 통해 한 단계씩 넘어간다. 색인이 생성되는 것과 비슷하다. 글자수를 채웠고, 득점어휘(키워드)가 나왔다면, 득점표현(키워드와 연결되는 표현들)을 함께 보고, 더 많은 것을 충족할수록 좋은 점수칸에 담아두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칸'에 들어간 글이 바로 최종 심사위원(=독자)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논술고사의 글이나 블로그 글은 모두 최종 심사위원이 읽어볼 수 있는 기회까지 다가갈 작업들을 진행하는 것일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논술'이나 '블로그 글'이 대단한 명문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1. 깔끔한 글씨체
논술강의자들이 대부분 강조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 디지털시대에는 손글씨를 직접 쓰는 경우가 없다 보니, 블로그 글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블로그에서는 '글씨체'가 아니라 '가독성'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보기 좋게 글을 작성하는 방법은 필수적이다. 손으로 적은 종이를 보는 순간 읽기 싫을 정도라거나, 혼동할 정도면 안된다. 블로그에서도 마찬가지다. 내용에 맞게 적절한 줄 바꿈을 해서 읽기 편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글씨체가 뭐 중요하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논술시험을 보는 1-2시간 정도에는 집중하며 쓰면 충분히 괜찮은 글씨체로 글을 쓸 수 있다. 그마저도 '깔끔한 수준'만 유지하면 충분하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줄 바꿈을 조금 더 자주 해주면 가독성이 좋아진다.
2. 표준어법
논술시험에는 당연히 표준어법이 중요하다. 특히 티스토리처럼 맞춤법 검사가 불가능한 손글씨 시험에선 더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비문을 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고, 헷갈리는 표준어휘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블로그의 경우에는 최근 문자의 줄임말 영향으로 표준어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티스토리에서는 반드시 맞춤법 체크를 하고 발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체크를 하지 않고 비문을 많이 발행하게 되면 블로그의 검색률이 매우 저조해질 것이다.
3. 글을 읽는 능력, 문해력
사실 논술은 글 읽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논술 시험에 첨부된 지문을 읽었을 때, 이에 대한 해석을 '표준적'으로 해야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글이라도, 몇 번 읽어보면 이해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읽는 능력을 충분히 개발해야 한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짧은 숏폼의 영상에 중독되어 긴 호흡의 글을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글 옆에 본인이 요약정리를 하면서라도 글을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
4. 숫자를 세는 능력
이건 논술 시험에만 적용되는 것이긴 하다. 논술시험장에서 가끔 봤던 바보들이 있는데, 바로 시간계산에 실패해서 글 마무리를 못하거나 정해진 글자 수를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숫자를 세는 것은 중요하다. 이건 모의고사를 자주 치러보며 본인이 연습해야 한다.
논술시험을 이용한 지원전략 (2008년 버전)
예전에 정리된 이 부분은 간략히 읽고만 넘어가면 된다. 사실 논술시험은 대학교의 부가적인 점수에 불과해서, 당락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대학교 상향지원을 하였을 경우 - 정반대의 주장을 하자
사실 대학교를 상향지원한 사람이 '논술'로 뒤집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이 그저 그런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술로 당락을 바꾸려면 엄청난 명문장 생성기가 되거나, 정반대의 주장으로 눈에 띄어보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반대로 주장을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반대주장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의견을 전개하면 점수를 잘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자신이 있다면 도전할 만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대학교 하향지원 또는 적정지원을 하였을 경우 - 이상한 짓만 하지 말자
대부분의 사람들의 수준이 비슷한 상황이다. 그래서 점수를 더 받겠다는 이상한 주장만 하지 않는다면 논술에서는 쉽게 통과할 수 있다.
강남 논술학원의 수업 내용
논술을 쓰라고 하면 우선 막막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내 생각도 없는 마당에, 남의 생각을 읽고 요약하고 자기 의견까지 제시하라니!
당연히 막막하고 황당할 뿐이다. 그런데 강남 논술학원을 다니고 나면 대충 감이 잡히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는 단 두 가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논술이라는 형식이 '익숙해'졌고
- 학원에 다녔다는 '최면'에 걸린다는 것이다.
논술이라는 것도, 어찌 되든 간에 한 형식에 불과하며 가장 정형화된 공식이 존재하는 글쓰기의 방식이다. 몇 번 읽고, 연습해 보면 누구나 그런 수준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난 학원을 다녔으니까!"라는 선생들이 걸어주시는 최면에 빠져 논술문제가 잘 이해된다고 느끼게 된다.
강남의 논술학원에서 가르치는 스킬은 다음과 같다.
- 기계적인 '글자 수' 배분 방법
- 주제에 대한 기계적인 접근법
- 예상되는 문제 짚어주기
- 자신감 심어주기
이 네 가지가 학원에서 전수하는 스킬이며, 이는 개인적으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학원 강사들은 논술이 글쓰기 공식에 입각한 글쓰기임을 알고, 최대한 빨리 몸에 익히게 해서 최소한 보통 수험생이 쓰는 글 정도는 쓸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글자 수와 문단 수를 재빨리 계산하여 결정한 후, 바로 개요를 작성하여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다.
논술학원에서 말하는 글쓰기의 공식은 다음과 같다.
논술 분량에 있어서 500~800자 정도면 아주 단문에 속하고 1000자 내외가 보통, 1200~1300자 이상이 장문에 속한다.
고로, 분량에 따라 문단을 나누는 형식은
- 단문 (500-800자) : 3 문단
- 중문 (1000자) : 3~4 문단
- 장문 (1200자 이상) : 4~5 문단
그렇다면 간단히 계산해서 한 문단에 200자~300자 분량으로 글을 쓰면 된다.
이제는 단문 논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 통합적 사고를 본다는 명목 하에, 여러 지문을 비교분석을 진행하기 때문에, 분량이 1000자에서 1300자가 보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론을 2~3 문단으로 나누어, 지문을 비교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후, 마지막 결론에서 강조하는 형식으로 마무리를 하면 된다.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글 형식은 이게 전부다. 이걸 여러 문제로 접하면서 '분량'을 딱 보는 순간, '아 이건 이런 구성'이라는 반응이 나오도록 '훈련'을 하는 셈이다.
논술 주제에 대한 기계적인 반응은, 평소에 나올만한 주제에 대해서 접근하다 보면 답이 나온다.
논술은 애매모호한 의견이 나올만한 주제를 문제로 출제하지 않는다. A 아니면 B라는 의견이 확실한 주제를 낸다. 2008년 당시에는 안락사나 뇌사 인정, 기여입학제 등의 주제를 출제하였다. 제시되는 지문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문제에서는 지문 내용을 잘 해석해 보면 어느 한쪽으로 의견이 치우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포인트를 읽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 바로 기계적인 주제접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상문제에 대한 부분도 쉽게 답이 나온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 중에서 의견이 확실하게 갈리는 것이 어떤 게 있겠는가?
2008년 당시, 운하 사업 같은 경우는 당선자의 입장으로 정치적 주제다 보니 손대기엔 조금 크고, 태안기름유출사고에 대한 기업의 자세나, 봉사활동의 가치 등에 대해서도 충분히 나올만한 분야가 된다는 것이다.
인디언의 기우제는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인디언들이 영험해서가 아니라 비가 오는 그날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강남학원가의 문제 적중률이 높은 이유는 그들의 노력도 있겠지만, 출제된 문제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적중시키지 못한 90%의 문제는 그저 '참고자료와 연습문제'라고 넘겨버리는 법이다. 이것이 그들이 심어주는 자신감의 정체이자, 강남불패의 실체다.
논술시험을 위한 실제적인 연습 몇 가지
1. 연습하기 - 읽기
실질적으로 논술을 연습하기 위해서는 신문구독이 꽤 도움이 된다. 조선일보든, 한겨레든 구할 수 있는 신문을 다 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사설'이 아닌 '칼럼' 분야를 읽는 게 낫다. 사설과는 달리, 해당 필진이 꽤나 생각해서 쓴 글이기도 하고, 사설처럼 신문사의 논조만 너무 강하게 드러나는 글이 아니다 보니 적정한 수준이 된다.
2. 연습하기 - 쓰기
쓰기 연습에서는 글의 분량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분량이 얼마 안 남아도 강하게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분량이 많이 남아도 말을 적절히 돌리며 공간을 메울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쓰기 연습은 타인과 하는 것이 좋다. 앞서 언급한 칼럼을 200자로 요약하는 연습을 하며 읽어보는 방법이 괜찮다. 주의할 것은 중요한 내용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잔가지들을 모두 털어내는 데에 있다.
요약을 분명하게 한다는 것은 정확하게 내용을 뽑아낼 줄 안다는 것이고, 그렇게 내용을 뽑아낼 수 있다면 내용을 불려 나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3. 연습하기 - 실전대비
논술은 기출문제를 풀어 볼 필요는 없다. 그런 내용은 지원 대학의 성향을 연구하는 자료로 사용하면 된다. 즉, 까다롭고 이상한 내용이 논술문제로 자주 등장하는 학교의 경우는 논술 점수 비중이 높으며, 생각보다 논술로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로 무난하고 별 특징이 없는 문제를 제출하는 학교는 논술시험이 그저 지원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정도로 활용된다는 뜻이 되겠다. 그러므로 원하는 대학의 기출문제를 주욱 살펴보면 대략 감이 올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문에 나오는 주요 기사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서론-본론-결론으로 써보는 연습을 하면 좋다. 우선은 1-2 문단 정도의 300-400자짜리 단문연습을 하면서 서서히 분량을 늘려가도록 하는 것이 좋다.
4. 연습하기 - 첨삭지도
논술에 있어서 첨삭지도가 없으면, 본인도 불안할 뿐만 아니라 논리전개에 비약이 생기는 자신만의 단점을 보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고로, 첨삭지도를 받는 것은 필수다. 당신이 보기에 무능해 보이는 학교의 국어 선생님들이 이런 쪽에 도움을 받기가 참 좋다. 이런 선생님께, 첨삭지도를 부탁드리는 것은 결코 실례가 아니고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 반드시 써먹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