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잡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 #1. 2008년 6월 16일-17일

Ken. 2024. 6. 3.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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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당시 적었던 일기를 정리하면서 각색한 글이다. 나는 군대를 전역하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2008년이면 금융위기의 시기였지만, 솔직히 전역이라는 꿈에 부풀어 그런 것도 잘 몰랐다. 비행기표는 최대한 저렴하게 왕복 100만 원짜리를 찾아 구매했지만, 환율은 1유로에 1600원이던 시절이었다.

 

2008년 6월 16일, 중국에 도착하다.

중국 베이징 공항 2008년 6월

내가 구매한 유럽 항공권은 중국을 경유하여 넘어가는 티켓이었다. 영국 런던으로 들어가고, 그리스 아테네에서 나오는 티켓이었다.

 

2008년 당시, 두 달 짜리 리턴 티켓으로 약 100만 원 정도에 구매했다. 그때는 인터넷 최저가 검색 같은 게 없어서, 인터넷으로 여행사 사이트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가격을 검색하고 구매했었다.

 

중국에 도착할 때는 비자가 없었다. 바로 다음날 떠나는 티켓이 있었기 때문에, 입국심사대에서도 일시 경유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나에게 24시간 스테이 퍼미션(Stay Permission)을 주었다.

 

스테이 비자가 있었기 때문에 공항 밖으로 나가서 베이징 시내를 둘러볼 수도 있었지만, 중국 여행 계획이 없었고 위안화도 없었기 때문에 공항 안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북경수도공항 3번 터미널은 당시 새로 지은 신터미널이라 시설이 매우 깨끗했다.

 

나는 공항 내부에서 환승통로를 통해 탑승동으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외국에 나와서 긴장도 되었지만 A동 끝쪽으로 이동해서 적당히 괜찮은 소파를 발견하고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정말 신공항이었던 북경수도공항 제3터미널

 

자고 일어나고를 반복했더니 대충 잔 느낌이 났다. 밥은 비행기에서 먹었던 것도 있어서 특별히 먹지 않고 노숙을 시작했다.

 

북경공항의 구석 끝에 누울 수 있는 침대소파가 있었다.

등 가방 하나만 부여잡은 채, 그대로 잤다. 그나마 공항이기 때문에 가장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었던 기억이다.

 

2008년 6월 17일 -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

아침 7시가 되자 슬슬 눈을 뜨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항에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간단히 미숫가루 한 컵을 먹고서 비행기 카운터를 방문했다.

에어차이나 티켓 2008년 6월 17일 베이징-런던행

카운터에서 확인을 해보니, 비행기는 코드셰어로 운항하는 비행기다. 에어차이나 비행기가 아닌, 버진에어라인이다.

 

기내식이나 서비스가 조금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사람들도 많이 보여서 괜히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가 반가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줏어들은 이야기로, 연결 편이 다음날인 경우에는 항공사가 숙소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내가 확인을 안 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전혀 그런 확인을 하지 않고 공항에서 냅다 잠만 잤다. 그래서 나중에 꼭 체크하겠다고만 다짐을 했다.

 

면세점에서 챙긴 것은 담배 한 보루. 그리고 비행기 내에서 한 보루를 더 샀다. 내가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필요했다. 바로 당시 런던 유학생들의 알바였던 라이드 비용으로 지불하기 위해서였다.

남아버린 담배 두 보루

영국에 도착하면 공항부터 숙소까지 지하철을 통해 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처음가는 곳이고, 짐도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다는 유학생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게시판을 통해 기사와 연락을 했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도착하는 비행기 시간 등을 체크했다.

 

흥미롭게도 그가 요금으로 요구한 건 담배 두 보루였다. 면세점 담배가 한 보루에 20달러(약 2만 3천 원)이었던 반면, 영국에서는 20파운드(약 4만 원)이었다. 그래서 면세점에서 두 보루를 사면 40달러, 약 4만 원 정도지만 영국에서는 8만 원 정도가 됐다.

 

기사는 이 시세차익으로 4만 원 정도에 자신은 8만 원을 먹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한 면세점에서 담배 두 보루를 살 수가 없었기에, 하나는 먼저 사서 가방에 넣은 뒤 수하물로 맡기고, 또 다른 하나는 비행기에서 사서 손에 들고 내렸다. 그리고 꾀죄죄한 배낭여행객의 짐을 깐깐하게 들춰보려는 세관직원은 없었다.

 

12시간의 비행 끝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을 하게 되었고, 나에게는 담배 두 보루와 짐가방 만이 있었을 뿐이다.

 

게이트를 완전히 빠져나온 뒤, 나는 종이에 적어온 기사의 연락처로 전화를 하기로 했다.

 

고액권밖에 없던 나는 어쩔수 없이 편의점에서 신문을 사면 물을 주는 프로모션 제품을 골라 동전을 얻었다.

 

그리고 신나게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문제는 전화가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저 여자의 목소리로 '잘못 걸었다'는 메시지만 나올 뿐이었다.

 

30분 동안 반복해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어쩔 수 없이 지도를 보며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런던의 교통카드인 '오이스터(Oyster)' 카드를 당당히 발급하고, 5파운드 정도를 충전(Top-up)했다. 그리고 그 길로 New Cross Gate 역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런던의 동남쪽 '뉴 크로스 게이트' 역

 역까지 가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어쨌든 서쪽 끝인 히드로 공항에서 동쪽 끝인 뉴 크로스 게이트까지 가기만 하면 됐으니까. 우리로 치면 인천공항에서 하남까지 가는 정도였다.

 

지하철 시스템은 비슷해서 런던브릿지에서 갈아타면 되었다. 어려운 것은 1도 없었다. 다만, 런던브리지부터 뉴크로스게이트에 이르는 '템즈링크'라는 철도를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런던브리지에서 뉴크로스게이트 방향의 기차를 타려고 섰고, 곧 이어 도착한 기차를 탔다. 그리고 그 기차는 아무렇지도 않게 뉴크로스게이트를 지나쳤다. 나는 내려야 할 곳에서 세 정거장쯤 지나친 역에 정차하자 바로 내렸고 멍 때리고 있었다. 대체 나는 무슨 잘못을 한걸까? 나는 다시 런던브릿지 방향으로 돌아가는 차를 잡아타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역의 전광판을 살펴보니 거기엔 'Call at'이라는 사인이 보였다. 한국에서 배워본 적 없는 영어표현이었지만 감이 왔다. '정차하는 역'이라는 뜻이었다. 조금 기다려보니 '뉴크로스게이트'라는 이름이 옆에 떠 있는 차가 들어왔고, 간신히 탑승했다.

 

영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였지만, 열심히 달리고 달려서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30분이었다.

잔돈을 바꾸려고 샀던 물과 신문이 함께 있다.

숙소에 도착하니 그제야 힘이 쭉 빠졌다. 한참을 타지에서 긴장을 하니 이 안전함, 안락함이 너무 그리웠다.

 

나에겐 예상치 못한 담배 두 보루가 남았지만, 그렇게 영국 여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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