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잡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 #16. 로그로뇨에서 나헤라까지

Ken. 2024. 6. 1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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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4일, 로그로뇨를 출발해서 나헤라까지 걸어간 날이다.

 

 

산티아고 순례자길을 따라서 걸으면, 이것보다는 조금 짧게 걸어갈 수 있다. 약 6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산타 마리아 데 라 아순시온 성당 (Iglesia Santa María de la Asunción)

로그로뇨(Logroño)는 나름 커다란 동네라서 대성당(Concatedral)이 있다. 규모가 상당히 큰 성당이다. 한국으로 치면 상위 교구에 해당하는 성당이다. 로그로뇨를 출발하면서 그런 성당들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로그로뇨를 빠져나오면 곧 만나게 되는 게, 바로 이 폐허다. 산 후안 데 아크레(San Juan de Acre)다.

San juan de Acre

옛날 순례자들이 아팠을 때, 이들을 보호해주고 간호해 주던 병원 터다. 이 건물도 예전에는 성당에서 관리하는 건물이었겠지만, 이제는 흔적만 남아서 순례자들을 반기고 있다. 지금은 그냥 바로 병원으로 갈 수 있는 시대기 때문에 역사를 느끼는 것뿐이다.

 

그 이후 나 바레떼(Navarrete)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이 마을에 의외로 엄청나게 화려한 성당이 있다. 이글레시아 산타 마리아 델라 아순시온(Iglesia Santa María de la Asunción)이라는 곳이다.

 

보통 이글레시아(Iglesia)라고 부르는 경우는 기독교 교회를 의미하지만, 스페인에서 도심을 제외하고 신교(기독교) 교회를 찾아보기는 조금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여기는 조금 작은 교구성당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아순시온은 성모의 '승천'이라는 뜻으로, 산타 마리아 델라 아순시온이라고 하면 '성모승천교회'라는 뜻이다.

 

내부는 이처럼 엄청나게 화려한 금박 장식으로 뒤덮여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도 전쟁 피해가 없이 이렇게 유지되었다는 것도 대단해 보인다.

 

이곳은 성모 마리아를 주제로 하고 있는 성당이라, 이처럼 성모상이 여러 군데에 놓여 있다.

 

가운데 있는 본당의 상징도 성모 마리아다.

 

작은 동네에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성당이 있다는 뜻은 결국 이 동네가 오래된 역사 속에서 발전한 곳이란 의미기도 하다.

 

떠나는 사람들, 지쳐가는 사람들

일주일 이상을 계속 걷다 보니 생각보다 피로가 많이 쌓인다.

 

발이나 근육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하면 '내가 지금 왜 걷고 있지?'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 셋을 이끌고 걸어가던 멕시코 부부도 분위기가 안 좋았다. 아이들도 지치기 시작하고, 부모들도 약간 버거워 보이는 상태다. 이 분들도 고민하다가 버스를 타고 몇 도시를 넘어간 다음, 산티아고 부근에서 다시 걸어서 마무리하고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겨우 며칠 같이 걸었다고 또 섭섭해지기도 한다.

 

나도 이 무렵 발이 아프기 시작해서 일기에도 그렇게 썼다.

 

"발등인대도 아프고, 느낌이 안 좋다. 뜨거운 햇빛 아래 내가 지금 왜 걷고 있나? 이런 생각이 자꾸 든다. 그래도 걸어야지 뭐."

나무에도 붙어있는 노란 화살표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 나헤라(Najera)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아담하게 작은 개울을 끼고 있는 예쁜 곳이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자 꽤나 흥미로운 정보가 있었다. 수영장이 있었고, 중국식당이 동네에 있다는 것이었다.

 

힘든 것도 잠시 잊고, 수영장에서 발을 담그고 놀았다. 물도 시원해서 달아오른 다리도 식고 마사지도 되었다.

 

그 이후에는 동네 중국집을 찾아서 돌아다녔다. 아시아 사람도 드문 동네에 중국식당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전날에는 아쉬운 대로 라면을 끓여 먹었지만, 이번엔 진짜 중국요리였다. 오래간만에 먹는 '아시아의 풍미'에 기분이 좋아졌는데, 식당 주인과 식당 주인의 부모님까지 나와서 나를 쳐다봤다.

 

중국인은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중국어로 이야기를 했지만 그 마저도 신기했는지 연신 인사를 하며 조심히 가라고 배웅을 해주었다. 그 중국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알베르게로 돌아가던 길에서 나를 보고 신기해하던 스페인 아이들이 있었다. 인종차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듯했지만, 그냥 순수에 가까운 무지 같은 것이다. 화를 낼 필요도 없고, 그냥 인사를 하면 되는 정도?

 

웃으면서 애들 사진을 찍자, 얘들도 신나서 포즈를 잡아준다. 순수한 친구들이다.

 

내일 걸으며 먹을 식품도 사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알베르게 앞에는 예쁜 꽃들이 잔뜩 펴 있었다.

 

힘들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런 꽃을 보고 쉬고 있으면 또 내일 걷는 게 기대가 되는 신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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