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잡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 #19. 부르고스(Burgos)까지 향한 날

Ken. 2024. 6. 2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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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이 언제나 순탄하지는 않다. 2008년 7월 4일 컨디션이 너무 떨어졌던 이 날, 나는 버스를 탔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까지

산신령의 알베르게 같은 곳에서 비스킷과 우유로 아침식사를 마치고서 또 걷기 시작했다.

 

이번 코스에서는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이 아닌, 숲 길이 있었다.

 

숲 길이라는 말은 결국 '산'이라는 뜻이다.

 

산 길처럼 계속 오르는 언덕은 아니지만, 조금씩 언덕으로 되어 있어서 어느새 높은 곳까지 올라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표지석들이 때때로 나타나는데, 사람들이 돌을 쌓아두기도 하고 저마다의 표식을 하고 가기도 한다.

 

 

순례길을 따라 마을이 조성된 경우도 있다 보니, 현대에 만들어진 도로들은 이 순례길 주변에 조성된 경우가 많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런 산지로 되어 있고, 일반 도로는 더 편한 직선 평지에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현대식 도로가 뚫린 뒤로는 사람들도 그쪽으로 많이 이주해서, 가끔은 순례자길 위에 오래된 '폐허 마을'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라는 성인의 마을인 이 곳에는 성인의 석관이 있다.

 

그래서 성당의 크기도 크고, 장식도 매우 웅장하다.

성당 내부에 있는 '후안 데 오르테가' 성인의 석관이 있고, 주변의 꼼꼼한 장식들을 살펴보는 것도 순례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묘미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라는 동네는 산골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이 모여들지만, 시설이 그렇게 좋진 않다. 여기도 알베르게는 있었지만, 다른 마을로 넘어가기로 하고 조금 더 걸어갔다.

 

마을을 조금 벗어나려고 했는데, 그 동안 발의 피로가 누적되어서 컨디션이 거의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이다음에 만나게 되는 큰 도시가 바로 부르고스였는데, 이곳까지 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버스는 조금 아랫동네로 내려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부르고스(Burgos)를 향하는 버스 - 15분의 문명체험

많은 사람들이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여 다음 마을까지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몸의 컨디션이나 상황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례길을 걷는 동안에는 뭐랄까,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마치 반칙처럼 느껴진다.

 

나도 2주 가량을 걷다 버스를 타기로 결심하기까지가 꽤나 오래 걸렸다. 내가 '반칙'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면 중세시대의 순례자도 아니고, 여행과 체험을 병행하는 내가 몸을 상하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물론 사람에 따라 입장은 다르겠지만, 내 결론은 '몸을 상하진 말자'였다.

 

 

걸어가면 3시간은 걸어가야 할 거리가, 버스로 단 15분 만에 끝이 났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버스를 타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15분의 버스체험(?)에서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바로 전에 없던 멀미다.

 

2주 정도 오로지 몸으로만 이동하던 내가 버스를 타자 갑자기 멀미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는 시간이 워낙 짧아서 그러려니 싶었는데, 여행이 모두 끝난 뒤 한국에 와서도 멀미 증상은 조금 있었다. 아마도 기계와 멀리 떨어졌던 몸이 다시 적응하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부르고스 대성당 - 순례자로 만나게 되면 감동하는 곳

짧은 버스 탑승을 뒤로하고 도착한 부르고스는 팜플로나 이후 만나게 되는 가장 큰 도시였다.

 

이곳의 압권은 부르고스 대성당인데, 1200년 무렵 만들어지고, 170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규모로는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 다음으로 큰 규모라고 한다.

성당의 전체 모습은 이런 형태고, 가장 높은 첨탑은 88미터 정도다. 일반 건물로 치면 약 30층 높이의 빌딩이 서 있는 수준.

 

도시의 가장 주요 관광지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이 성당을 보러 온다.

 

크레덴시알을 가지고 성당을 방문하면, '순례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다. 일반 관광객이 7유로 정도의 입장료를 낸다면, 순례자는 2.5유로를 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약 2주 가량 사막과 산길을 헤매다 이 엄청난 건물을 보면 감동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도 그냥 관광지라고 버스를 타고만 왔다면, 잠깐 놀라고 말았겠지만, 순례길을 걷다 이 건물을 만나자 참 많이 놀랐다.

 

이 지역은 이베리아 반도가 이슬람 세력과 대결하던 거의 마지막 전선이었기 때문에, 이곳 자체가 요새처럼 만들어져 있다.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에 등장하는 '요새'의 모양으로 지어진 부르고스의 '대문'이다.

 

특히나 이 곳의 건물들은 하얀 암석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뭔가 웅장해 보이는 느낌이 있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미나스 티리스'를 보는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크기나 규모 면에서도 엄청나다. 성당 주변을 둘러보다가, 내부에 들어가면 하얀 벽돌과 황금빛 장식들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내부의 장식은 다른 성당들만큼 화려한 금박으로 되어 있다.

이 성당의 메인 회랑 한가운데에는 레콩키스타의 상징인 '엘 시드'의 무덤도 있다. 엘 시드 자체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지켜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인물이다.

 

 

성당의 바깥에는 중정이 있는데, 이 중정에는 예술가들과의 전시도 진행되고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사람은 전부 조각상으로, 예술가의 전시품이었다.

 

 

성당의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햇빛이 통과되면, 이처럼 내부 복도에는 아름다운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부르고스 성당 주변으로는 큰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성당 구경을 마치고 알베르게에 도착한 나는 숙소에서 씻고 나온 뒤, 번화가로 나가서 식사를 했다.

같이 길을 걷다 만난 스웨덴 친구가 다음 날 바르셀로나로 떠난다고 하여 함께 식사를 하고 시내를 둘러보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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