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찾을 수가 없었는데, 박대성 선생의 사이트가 있었다. 그의 도록만큼은 하지 못하더라도, 생각보다 그의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 좋았다. 다만, 관리를 거의 하지 않아서, 다 죽은 사이트가 되어버렸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그냥 한국화 같지 않다"라는 것이다. 그림체가 차분하면서도 충분한 에너지를 지닌데다 그 작품의 크기가 갖는 거대함도 그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79,박대성,霜林>
79년, 국선수상작인 이 그림을 보면 물론 '잘 그렸다'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지금 소산의 그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뭔가 아직은 덜 다듬어진 '가능성'의 집합체 정도로 인식이 된달까. 나는 이 작품보다 후기의 작품을 보고난 후, 역으로 초기작품을 보았기에 더 그런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의 작품들 못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지금 보이는 그 강렬한 기운을 느끼기에는 조금 모자라다. 건방진 말투를 좀 보태자면 그림에서 느껴지는 그만의 '포스'가 좀 모자라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그의 작품은 실물로 보며 그 크기나 웅장함을 온몸으로 느끼면 좋을듯 싶지만, 그 기회는 훗날 그의 작업실이 있는 경주를 방문하거나 해야 가능할 듯 하고 아직까지는 실제로 본 작품이 딱 하나밖에 없어서 아쉬운 실정이다. (작품 크기가 잘 실감이 안되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큰작품은 가로 8M정도 한 크기에 높이는 2-3M정도 되니까, 왠만한 벽은 다 둘러버리는 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의 작품들 중에는 독특한 느낌이 나는 그림들이 있는데 아래에 잠시 소개해본다.
<당나귀>
<피라미드>
한국적인 화풍으로 외국풍경을 그린, 독특한 질감의 이 그림들과 그의 도록에 있는 뉴욕 센트럴파크를 그린 그림이라던가,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늘상 머리 속에 자리하던 고정관념이 사라진다. 한국화에는 기왓장과 볏짚이 꼭 등장해야 한다라는 은연중의 고정관념. 한국화풍의 이국의 모습은 오히려 더욱 잘 어울려보이고, 이국적인 느낌을 더욱 강하게 표출하기도 한다. 수채화나 유화의 붓이 아니고, 캔버스나 켄트지가 아니더라도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줄 수 있다.
원래는 그의 작품 중에서 최근작인 '법열'이라는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건만 그림파일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그건 아무래도 직접 봐야하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상과 십대제자상을 그린 그 작품은 숨이 턱 막힐 정도이니 기회가 되는 사람은 꼭 접해보길 바라며.
<적설, 박대성>
그의 그림을 하나 더 소개해보자면 적설이라고 하는 이 그림을 소개하고 싶다. 도록에서 보면 더욱 자세하게 볼 수 있지만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그림파일의 한계상 이 정도 까지가 전부다. 불국사의 모습과 눈이 내림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고즈넉한 자취까지 (여기서는 발자국이 잘 안보인다) 새벽 푸르른 공기 속에서 아침 일찍 눈을 밟고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차분한 기운이 가장 잘 나타나는 그림 같아서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하고 화면의 반절이 백색공간이지만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차 있는 듯한 그 모습이 마음에 든다. 가끔 새벽에 일어나면 공기가 파르스름하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런 파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새벽녘에 만나는 곱게 쌓인 눈은 사람을 침묵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그림은 그렇게 사람을 침묵하게 만든다.
미약하나마 방안에서 LCD모니터로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을 듯 싶다.
01234
그의 작품세계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모습은 아마 수묵화에 신의 한 획이 있다고 하면 그는 그 획으로 다가가는 듯 싶다
<팔팔조도, 팔대산인, 청대>
중국 청대의 천재화가라 불리었던 팔대산인. 단 한 획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슴으로 그리는 그림. 소산 박대성, 그가 그려나가는 그림의 길이 마치 팔대산인을 보는 듯 하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소를 기가막히게 잘 잡던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얼마나 칼질을 잘했던지 소는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다고 한다. 생과 사를 넘어서버린 그 칼질은 화엄사상과 다르지 않다. 더 이상 번잡한 기교가 필요없는 단 하나의 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