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잡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 #11. 대도시 팜플로나(Pamplona)에 도착!

Ken. 2024. 6. 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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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6일 셋째 날의 순례길은 정말 짧게 움직였다. 짐을 좀 줄이기 위해 마드리드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짐을 보내려고 하기도 했고, 신발도 문제가 슬슬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도시였던 팜플로나에 머물기로 했다.

 

라라소아냐에서 팜플로나까지

 

라라소아냐에서 팜플로나까지는 약 15km 정도, 며칠 걸은 거리에 비하면 정말 짧은 거리다. 똑같이 새벽 6시 무렵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출발했기 때문에 오전에 걷는 일정이 모두 끝이 날 정도다.

 

전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친해진 캐나다 친구와 함께 걷기 시작하다 보니 아트라비아(Atrabia)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라라소아냐에서는 약 2시간가량 떨어진 곳이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팜플로나'에 포함되는 것 같지만, 도심 한복판에서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다.

 

첫 출발지인 프랑스 생 장 삐에드 뽀흐에서부터 이곳까지 계속 '시골'같은 한적한 느낌을 받다가, 팜플로나에 가까워질수록 도시의 느낌이 나기 시작한다.

 

시골 같았던 이런 풍광들이 점점 도시같은 느낌으로 변해가면서 조금 복잡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시골 같음이 편하다고 느끼는 이에게는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도시가 그리웠던 이에게는 안도감이 찾아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도시라기 보단 '읍내'의 느낌이 나는 이곳에서, 함께 길을 걸었던 캐나다 친구인 레이첼과 아침식사를 했다. 레이첼은 팜플로나가 이번 순례길의 종착지라고 했다. 팜플로나까지만 가고 캐나다로 돌아갔다가 나중에 다시 완주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후 그녀와는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하며 지냈는데, 레이첼이 다시 길에 돌아간 것은 3-4년이 지나서였다.

 

이 날에도 영상을 찍긴 했다. 아침을 먹으려고 모여든 순례자 친구들이다.

 

 

 

나는 이때부터 또르띠야(Tortilla)의 맛을 깨닫고, 아침으로 이걸 먹기 시작했다.

 

정식 명칭은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Tortilla de Patatas)로, 양파와 감자를 볶고 거기에 계란을 넣고 익혀낸 파이다. 스페인 엄마들의 기본 요리 중 하나인데, 양파와 감자의 맛 때문에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어색하지 않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자주 해 먹었던 요리 중 하나다. 양파와 감자를 볶은 뒤, 계란만 넣고 익히면 되지만 약불로 천천히 익혀야 잘 만들어진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조금 더 걸어가니 곧 팜플로나가 보인다.

팜플로나는 도시의 느낌이 확실히 난다. 순례자 길에서 만나는 가장 첫 '도시'이기도 해서 신기해보인다.

 

이 당시 팜플로나의 알베르게는 상당히 신식이어서 좋았다. 시에서 운영하는 건물이라 체육관을 개조했다고 하여 깨끗하기도 했다.

알베르게의 내부는 2층침대로 가득 채워져 있었지만, 이 당시 알베르게답지 않게 가장 최신식인 침대별 조명과 충전 콘센트가 있었기 때문에 시설이 좋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효과는 없지만, 그래도 코골이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칸막이가 조금씩이라도 있었다.

침대도 깨끗한 편이고, 어둡게 유지해주고 있어서 조금 일찍 자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시설이었다.

 

참고로 2008년 6월은 유럽 축구대회가 있던 기간이다. 그래서 알베르게에 도착한 순례자들도 은근히 축구를 보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알베르게는 안전을 위해 짤 없이 밤에 문을 닫는다. 어떻게라도 축구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호텔이나 다른 숙소를 이용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저쪽 알베르게에서 축구를 보여준다는 말이 있다며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과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산 페르민 축제(소몰이 축제)의 도시 팜플로나

팜플로나는 스페인 북부에 있는 꽤 큰 도시다. 이 도시가 유명한 이유는 소몰이 축제로 알려진 '산 페르민 축제' 때문이다.

 

해외 이슈 영상으로 뉴스나 인터넷으로 한 번쯤은 보았을 이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 바로 팜플로나다. 실제로 소를 길거리에 풀어놓고 사람들이 쫓기기 때문에, 소에게 들이 받혀 죽는 사고도 빈번하지만 1324년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축제다. 코로나 때문에 2년간 중단되었다가, 2022년 다시 시작되었다고 한다.

 

팜플로나의 이 축제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온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바르셀로나'와 '빌바오'라는 쟁쟁한 도시들이 있다 보니 일부러 팜플로나를 찾아오기는 쉽지 않다.

 

팜플로나에 도착한 날짜는 2008년 6월 26일이었기 때문에, 도시에는 이 축제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도시 곳곳에는 소가 달리는 길에 마련되는 펜스가 조금씩 설치되고 있었다. 바닥에 보이는 네모칸이 저 기둥을 고정하는 도구다.

 

동네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소몰이 당일이 되면 시청 건물에서 시장이 나와서 시작을 선포한다고 한다.

 

여기가 바로 팜플로나의 시장이 나와서 축제의 시작을 외친다는 시청건물이다.

 

그러면 소들은 길거리에 풀려나와서, 펜스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마구 달리게 된다.

그리고 그 소들이 도착하는 곳이 바로 이 투우장이라고 한다. 길이는 약 800미터가량이 되고, 이 거리에서 사람들이 소에 쫓기며 축제를 즐긴다고 한다.

 

일주일정도 뒤에 이 도시를 통과한다면 이 축제를 구경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이 축제의 준비과정만 지켜보며 도시를 구경했다.

 

팜플로나라는 도시 자체는 정말 아름답다. 특히 구도심의 옛 건물들은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서, 오래된 스페인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 전체에 들뜬 기분이 느껴지기도 했다. 며칠 더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순례길에 계속 오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중간 점검을 할 수 있는 중요한 동네

팜플로나는 단순시 축제를 구경하는 곳이 아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초입에서 만나는 가장 큰 도시이기 때문에, 이때 중간 점검을 해야 한다.

 

나는 당시에 나이키 에어포스를 신고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그러나 산길과 흙길을 걸으면서 신발 밑창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무래도 등산화나 트레킹화가 아니기 때문에 발바닥에 살짝 잡힌 물집의 통증을 잡아주지도 못했다. 

사실 어찌어찌 버틴다면 4-5일가량은 더 걸을 수도 있었지만, 그럴싸한 신발을 살 수 있는 곳은 사실 팜플로나 같은 대도시 밖에 없었다. 이곳을 지나가고 나서 들리게 되는 큰 도시는 로그로뇨(Logroño)나, 부르고스(Burgos)인데, 최소 일주일 뒤에 들리게 된다. 식료품은 지나가는 마을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작은 마을에서 트레킹 장비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팜플로나에서 필요한 물건을 미리 점검하고 사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기억을 더듬어보면, 팜플로나는 순례길 초반에 상당히 중요한 '거점'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팜플로나에서 신발을 교체하였고, 가방에서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하여 마드리드에 있는 친구에게 소포로 보냈다. 덕분에 걷기 위한 컨디션을 갖출 수 있었다. 이처럼 소포를 보낼 수 있는 우체국도 팜플로나에 있으니,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게다가 중간에 다른 도시를 가거나, 순례길을 중단하게 될 경우에도 큰 도시로 이동하는 버스가 많은 팜플로나에서 결정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레이첼 역시 이곳까지만 걷고, 다음날 버스로 바르셀로나로 이동했다. 그리고 몇 년 뒤, 다시 팜플로나로 돌아와서 나머지 산티아고 여행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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