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잡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 #13. 에스테야(Estella)까지

Ken. 2024. 6. 1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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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에 호텔에서 조금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서, 또다시 아침 일찍 걸음을 옮겼다. 호텔 정원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아주 상쾌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서 에스테야(Estella)까지

 

2008년 6월 28일, 이 날의 코스는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에스테야까지 약 20Km 정도였다.

 

산티아고 길에서 만나 같이 걷게 되었던 형의 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도로를 타고 걷기로 했다. 원래 길을 따라간다면 흙길을 계속 걸었을 테지만, 거리를 좀 줄이기 위해서 직선 도로를 따라 걸었다. 물론 이 때는 몰랐다. 흙길을 걷는 쪽이 컨디션 회복에 더 좋았다는 것을.

 

딱딱한 아스팔트를 계속 걷는 것이 오히려 근육 긴장을 높여서, 걸을수록 더 힘들어진다는 걸 이때까진 잘 몰랐다.

 

푸엔테 라 레이나는 팜플로나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큰 동네다. 그래서 장을 보고 먹을 것들을 사서 출발했다.

 

순례길 상에 있는 도시에는 이런 조형물이 많다. 동네의 특색을 살려 만드는 곳도 있어서 이런 조형물을 보는 재미도 있다. 

 

한두 시간 정도 걸으면 보통 다음 마을을 만난다. 차로 움직였다면 10분 정도?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정 서고, 경기도 외곽 같은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정취다. 제주 올레길을 걸을 때에도 이런 비슷한 느낌이 들 것이다.

중세시대부터 조성된 마을들이기 때문에, 이런 오래된 성당과 건물들이 매우 흔하다.

 

지금은 사람들이 축구강국으로만 기억하는 스페인이지만, 약 500년 전 대항해시대를 주름잡으며 '무적함대'를 가지고 전 세계를 지배했던 제국이었다. 남아메리카 전체를 식민지로 두었을 만큼 '제국경영'을 한 나라다. 스페인에서 제국의 흔적을 볼 수 있을까?

 

사실 이런 오래된 마을이 바로 스페인 제국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인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식민지를 경영하며 도시건설 방식을 확립했다. 그 건설의 방식이 바로 '광장'을 중심으로 건물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광장에는 행정부(법원)와 성당, 상가가 들어선다. 동네를 운영하는 행정부와 송사를 판단하는 법원이 보통 하나나 두 개의 코너를 차지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미사를 보는 성당을 두어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오게 만든다. 그리고 시장을 배치하여 물자와 소식이 거래되도록 만든 것이 기본 구조다.

 

도시의 핵심만 추려둔 것이 바로 광장이다. 조금씩의 변형은 있지만,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부터 남미의 작은 도시들까지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동일하다. 

 

산티아고 순례길 상에 있는 마을들도 마찬가지다. 조금 오래된 마을들은 대부분이 이런 작은 광장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오래된 도로들이 모두 이 광장을 중심으로 뻗어나가게 되어 있다.

 

스페인어로 광장은 '플라자(Plaza)'다. 그래서 모든 마을에는 '플라자(Plaza)'가 있고, 가장 큰 광장은 플라자 데 마요르(Plaza de mayor)라고 부른다. 이 명칭은 스페인 지배를 받았던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적용되어 있어서, 마드리드에도 있고 동남아에도 있다.

 

이 날 지나간 작은 마을에는 특히나 더 오래된 건축들이 있었다.

이런 도로와 다리가 7세기~8세기 무렵 지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특히나 이런 높은 아치가 있는 다리들은 역사가 더 오래되었다는 말을 나중에서야 들었다. 물론 이 다리를 아직도 현역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이런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나 조선시대 다리를 건너는 것일 테니까.

 

현대화되어가는 순례길 - 자전거 순례객들

시대가 바뀌면서 반드시 걸어서만 순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진지하게 걷는 사람들 중에는 진짜 15세기 수도사처럼 다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정말 개인의 취향 차이일 뿐이다. 2008년에는 스마트폰도 없었지만 그때도 핸드폰을 쓰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순례길에 집중해서 걷는다는 건 분명 의미 있지만, 사람들은 바뀐다.

 

2008년 무렵에는 자전거 순례객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잘 다져진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게 되면, 하루에 약 70Km 정도 이동을 한다고 했다. 대략 일주일 정도 달려서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다고 했다. 자전거 순례객들은 자전거를 정비해야 하기도 해서 알베르게에서 마주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이 처럼 도로에서 마주치곤 했다.

 

최근에는 여행사에서 3-4일 정도 편하게 걷고 순례 인증서를 받는 여행 프로그램도 판매하긴 한다.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에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가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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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길은 아무래도 종교적인 의미도 있고, 관광으로서의 의미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다른 생각을 하며 간다. 하지만 적어도 순례길 여행을 했다면 굳이 진짜다 아니 다를 따질 필요는 없다.

 

2008년에는 2008년 식의 순례가 있고, 2024년엔 또 새로운 순례가 있을 뿐이다.

 

뜨거워도 너무 뜨거운 태양

스페인 북부는 정말 뜨겁다. 산이 거의 없기 때문에,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가 계속된다. 푸엔테 라 레이나를 지나면서부터는 이런 사막 같은 지형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 조금 힘든 순례길은 이때부터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다리는 천천히 익어가기 시작한다. 순례자길은 서쪽을 향해 걸어가기 때문에, 걷는 내내 몸 뒤쪽에서 올라오는 태양을 받으며 걸어간다. 반바지를 입고 걷다 보면 다리가 천천히 익어가기 시작한다. 

 

 

프랑스 남부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도 포도와 올리브가 잔뜩 열린다. 그래서 스페인 북부에서도 꽤 괜찮은 품질의 와인과 올리브유가 나온다. 그래서 이 동네 와인의 경우에는 한 병에 1유로 밖에 받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선크림을 온몸에 바르며 열심히 몇 시간을 걸어서 도착한 에스테야(Estella)에는 공식 알베르게가 있었다.

이곳의 관리자들은 수많은 순례를 끝마친 사람들이었다. 이런 크레덴시알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나름 신식 숙소로 운영되고 있어서, 돈을 내고 이용하는 인터넷도 있었다. 저때부터 이런 블로그를 운영했어도 좋았겠지만, 그때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다는 게 문제다.

 

 

이 날의 식사는 순례자 메뉴였다. 식초와 올리브유로 버무린 샐러드와 오징어튀김, 그리고 감자튀김이었다. 가격은 9유로. 정말 배만 채우는 용의 메뉴긴 하지만, 몇 시간씩 뜨거운 해에 시달리며 이 짭짤한 식사를 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에스테야라는 마을도 상당히 예쁘고 오래된 마을이었다.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던 곳이라, 중세 유럽에서 지내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 날은 토요일이라, 전체적으로 한적한 주말의 느낌이 드는 여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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