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잡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 #5. 2008년 6월 20일 - 영국과 영화

Ken. 2024. 6. 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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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8년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당시 작성한 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당시 사진들을 묵혀두는 게 좀 아까워서.

 

이 날은 금요일이었다. 런던에 근무하고 있던 지인과 저녁식사를 같이하기로 하여 나는 아침부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래서 낮에는 드라마나 영화로만 보았던 런던의 모습들을 따라다녀봤다.

영국 왕실의 상징 - 버킹엄 궁전

2008년 6월의 버킹엄 궁전

영화나 뉴스에 항상 나오던 그 곳, 버킹엄 궁전이다.

 

영국사람들끼리는 '벅 팰리스'라고도 부르는데, 약간 '까는 칭호'다. 근데 외국인이 그렇게 부르면 '네가 감히?'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특히 나이 많으신 어른들이 보통 그러는 편이다.

 

버킹엄 궁의 광경은 사실 생각보다 평범했다. 워낙 뉴스와 영화 등을 통해 많이 봤던 곳이기 때문. 저기 2층 창문을 통해 항상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영국 왕실의 상징이었다.

 

2008년 당시만 해도, 저기 건강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있었다. 혹시나 무슨 왕가 관련 행사가 있으면 볼 수 있었겠지만, 이 날은 당연히 없었다.

 

다음 날에는 무슨 행사가 있어서 도로를 통제하고 사람들이 돌아다니긴 했었는데, 이 때도 여왕을 볼 수는 없었다.

다음 날엔 무슨 행사가 있긴 했다.

저 때가 2008년, 저 이후로 15년을 더 살다 가셨다니... 나중에 기사를 찾아보니 저 당시에도 남편인 에딘버러 공과 여전히 시찰(?)을 다니며 건강하게 지내셨다.

 

버킹엄 궁은 런던에 가면 꼭 들려보긴 하게 되지만, 행사가 없다면 저렇게 문이 잠겨서 아무것도 없으니 지나가기만 하면 된다.

 

특히나 1982년 갑자기 담을 넘고 버킹엄 궁을 침입했던 마이클 페이건 사건 이후에는 꽤나 깐깐하게 지키고 있으니, 들어갈 생각은 굳이 하지 않아도...

 

마이클 페이건 사건 - 1982년 버킹엄 궁에 홀로 침입하여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고 나왔던 인물로, 넷플릭스의 더 크라운 시즌 4에 관련 사건을 드라마로 다루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1-2일 정도 궁에 머물렀던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궁 안에서 한 달가량 살았다고 한다.

 

더 크라운 |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실제 사건들에서 영감을 얻어 픽션으로 극화한 드라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이야기, 그리고 여왕의 통치에 영향을 준 정치적, 개인적 사건들을 조명한다.

www.netflix.com

 

포토벨로 로드 마켓 - 영화 노팅힐의 그 곳

1999년 작 영화 노팅힐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쯤 들려보는 곳, 바로 포토벨로 로드 마켓이다.

노팅힐의 배경이 이 동네다

 

2008년이지만 그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노팅힐을 기억하며 포토벨로 마켓을 찾았고, 버킹엄 궁과 멀지 않아서 가봤다.

영화의 그 곳이다!

영화를 찍던 10년 전과는 달라졌겠지만, 영화에서 보던 그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여기서 15년이 더 지났으니, 아마도 지금쯤이면 더 달라졌겠지.?

포토벨로 마켓의 평범한 모습

 

길거리 사람들의 패션은 지금이나 크게 차이 없어 보이는 걸 보니, 15년 정도 흐르면 패션이 돌고 도나보다.(네?)

 

 

영화에서 이 거리는 주인공인 윌리엄 대커(휴 그랜트)가 일상생활을 보여주기도 하고, 안나 스콧(줄리아 로버츠)을 잊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다.

 

안나를 잊기 위해 윌리엄은 마켓의 거리를 평범하게 활보한다. 화면의 오른쪽 방향을 향해 이동한다.

처음엔 평범한 횡보 장면인가 싶은데, 날씨가 변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조금 지나서는 이렇게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관객들은 '아, 이거 시간의 변화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시간의 변화는 이렇게 눈이 그치는 무렵으로 연결되면서 눈이 녹는 연출이 시작되고,

봄 꽃을 판매하기 시작하는 시장의 분위기로 완전히 바뀐다. 그리고 이다음, 윌리엄은 따뜻해진 날씨에 재킷을 벗고 자신의 서점으로 돌아간다.

 

이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는 이유는 우선 옛날 방식의 원테이크 아날로그라는 점 때문이다. 요즘이었다면 그래픽으로 다 만들어버렸겠지만, 약 200m 정도 되는 거리의 아이템을 전부 깔아놓고, 배우가 걷게 하여 실시간으로 변화시킨다. 저 앵글 아래 바닥에 얼마나 많은 전기선들과 레일들이 깔려있을지 짐작도 되진 않지만, 요즘엔 이런 방식의 원테이크 영상이 귀해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명장면이라고 보인다.

 

게다가 이 장면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윌리엄만 걸어가는 게 아니라, 조연인 친구 커플의 만남과 이별도 존재하고, 시간의 흐름도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윌리엄의 시작과 끝이 똑같다는 점(재킷을 벗고 걸어가는)에서 시간이 아무리 흘러봤자, 안나를 잊지 못하고 여전히 그대로라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08년에도 나는 이걸 추억하면서 혼자 이 길을 따라 걷긴 했다. 외국에 나오면 이런 테마를 잡고 여행하는 것도 즐거운 재미다.

 

참고로 노팅힐은 배우들의 대사가 상당히 위트 있다. 그래서 영어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영화 내용뿐만 아니라 대사를 들어보는 것도 좋다.

특히나 안나가 사용하는 대사들이 특히나 더욱!

 

이젠 클래식이 되어버린 영화 노팅힐은 넷플릭스에도 있다.

 

노팅 힐 | 넷플릭스

우연한 계기로 만난 내성적인 서점 주인 윌리엄 대커와 할리우드 인기 여배우 안나 스콧은 현실이라 믿기 어려운 로맨스에 빠진다.

www.netflix.com

 

마지막 사진은 포토벨로 거리의 끝자락에 있는 '폴 스미스 매장'이다.

2008년에도 있었고, 보아하니 지금도 있는 것 같다.

 

다른 고급 부띠끄 매장과 달리, 이 시장 거리에 있기 때문에 의외의 장소에서 폴스미스를 만나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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