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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 #25. 사아군(Sahagun)과 레온(Leon)

Ken. 2024. 7. 2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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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0일에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조금 긴 거리를 걸어가기로 했다. 약 21km 되는 거리로, 5시간가량이 걸린다. 중간에 만나게 되는 기착지인 '사아군(Sahagun)'이다. 알파벳으로는 사하군이라고 읽는 경우가 많지만, 스페인어로는 사아군이다.

사아군까지의 새벽길

 

7월 중순에 접어들기 시작하자 날씨가 너무나도 더워진다. 그래서 이동하는 시간을 앞당기기로 했다. 12시 무렵만 되더라도, 햇빛 때문에 앞으로 걸어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세타 지역은 굉장히 건조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마치 겨울처럼 추운 느낌이 든다. 한 여름이라고 하더라도, 새벽에 숙소를 나설 때에는 따뜻한 음료라도 마셔야 걸을만하다.

 

그리고 조금 뒤 해가 뜨기 시작하면 바로 더위가 시작된다.

열두 시 무렵이면 해가 너무 뜨거워서 걷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늘이 보일 때마다 조금씩 앉아서 쉬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건조하기 때문에 그늘에 앉으면 선선한 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물을 살짝 적셔주기만 해도 금세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부르고스에서부터 며칠을 더 걸으면 또 다른 대도시인 '레온(Leon)'에 도달하는데, 사아군은 그 중간에 있는 기착지다.

이때부터는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꽁꽁 싸매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도 손과 노출된 다리는 새까맣다.

 

이 날은 새벽 5시부터 걷기 시작하여, 8시 무렵엔 바에서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걷다 보니, 점심 무렵에 사아군에 도착했다. 사아군에는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도장을 받고 잠시 쉬었다.

 

사아군의 알베르게 앞에는 상징인 청동상이 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풀꽃들을 매일 꽂아주는 듯했다.

사아군의 알베르게에서 조금 쉬던 중, 고민을 했다. 그냥 레온까지 버스를 타고 넘어가는 게 좋을지, 며칠을 더 걸을지. 나는 충분히 걸을 만했지만, 같이 걷게 형의 컨디션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온으로 건너가면 영어로 진료를 볼 수 있는 병원에 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선 버스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름 작지만 알찬 도시였던 사아군이었지만, 버스가 하나도 없었다. 레온까지의 거리가 약 40km 정도였지만 딱히 버스정류장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사아군의 끝자락까지 도달하여 주변 상인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별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면 당연히 구글 지도를 검색해서 버스 등을 찾아보았겠지만, 2008년에 그게 가능했을 리가?

 

예기치 못한 히치하이킹

버스정류장을 계속 찾아 헤매던 와중에, 공무 제복을 입은 한 사람을 만났다. 정확하게는 산림청과 같은 소속의 직원인 듯했다. 레온으로 가는 버스를 어디서 타면 되냐고 묻자, 자신도 그건 모른다고 대답한다. 다만 본인이 레온으로 가기 때문에, 괜찮다면 자기가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그녀의 퇴근차를 타고 함께 레온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녀는 산티아고 순례길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는지, 레온의 알베르게도 잘 알고 있었다.

 

이름은 수사나(Susana, 영어로는 수잔)이었는데, 그녀는 동양 스타일의 정신 수행을 하던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레이키를 하고 있었고, 요가나 기수련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와는 이후에도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물었다. 예상치 못한 히치하이킹이었지만, 꽤나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스페인은 워낙 가톨릭 전통이 강하다 보니, 운동으로서의 요가가 아닌 '영성 수행'으로서의 요가를 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렇게 길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좀 신기할 따름이었다.

 

40분 정도 차로 달린 레온까지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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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스 이후 만난 대도시 레온

그렇게 수사나 덕분에 자동차로 편하게 도착한 레온은 거대한 규모의 도시였다. 사실, 거대한 규모라고 해봐야 한국으로 치면 보통의 도시 크기지만, 산티아고 순례자길을 걸으면서 보게 되는 마을이 아주 작다 보니 엄청난 대도시로 보이기도 한다.

 

여전히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기억에 남는 대도시는 팜플로나와 부르고스, 그리고 레온이다. 그중에서 레온은 부르고스와 마찬가지로 대성당이 있는 동네라 성당을 구경하는 맛도 있다.

 

갑자기 많아지는 자동차와 사람들을 보니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명에서 멀어져 있다가 다시 문명을 접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일같이 걸어 다니다 자동차를 타게 되면 멀미를 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레온은 알베르게도 거대하였다. 이 날 도착했을 때는 이미 90여 명이 이용하기 위해 머무르고 있었고, 다음날 아침식사까지 제공을 하는 곳이었다. 알베르게도 대성당 부근에 위치하고 있어서 잠시 성당을 보러 가기에도 좋았던 곳이다.

 

번화가다 보니 식당의 저녁 오픈시간도 8 시인 곳도 많았다. 밤 9시 30분에는 축복 미사가 있어서 참여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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