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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 #28. 사람들이 돕는 길

Ken. 2024. 10. 2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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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1일, 레온의 알베르게에서 새벽 일찍 일어나 다음 마을로 출발을 했다. 레온은 나름 공항도 있는 큰 동네다 보니, 도시를 빠져나오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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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사람들 - 사람들의 호의가 쌓여있는 노란 화살표의 길

새벽 일찍 출발을 하면서 동이 트기 시작한 도시를 가로질렀다. 어디까지 걸을지 정하지는 않고 무작정 걷기를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한 뒤에 항상 의심이 되는 것이 바로 길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다.

순례길을 표시한 안내표지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누군가가 이걸 다른 곳으로 표시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레온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동네의 불량배가 혹시나 다른 길을 표시했다면 어쩌지? 이런 쓸데없는 망상이 들기도 하니까.

그런데 막상 길을 걷다 보면 점점 그런 의심은 사라진다. 이건 직접 길을 걸어봐야 느낄 수 있다. 순례길을 따라 걷던 중, 다른 길로 빠지게 되면 여지없이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저쪽이라며 길을 알려준다.

가끔은 먹을 것을 사려고 길을 빠져나갈 때에도 그런 사람들의 눈치가 보인다. 마치 본인이 순례자 길을 수호하는 존재처럼 달려와서 길을 알려준다. 특히나 나처럼 이방인이라면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여 직접 달려와서 손발을 동원해서 알려준다.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다 보면, 사람에 대한 믿음이 다시 생겨난다.

적어도 길은 잃지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새벽 일찍 길을 걷기 시작하면 아침 햇살이 부서지고 있는 건물들을 구경하기 좋다. 사람들도 거의 없고, 오롯이 전체를 구경할 수 있다. 관광지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모습을 즐겨볼 수 있다.

10년 쯤 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길거리에 보이지도 않는 날이 온다는 걸 이때 짐작이나 했을까. 이 한적함이 좋다고 길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바실리카 데 라 비르헨 델 까미노(Basilica de la virgen del camino)

대부분의 성당들이 오래된 건물만 있을 것 같지만, 이와 같이 신식 성당도 존재한다.

굉장히 모던하게 지어진 건물로 전면에는 12 사도를 상징하는 청동 조각상이 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면, 청동상은 이처럼 현대적인 감각으로 제작되어 있다.

오래된 성당만을 보다가 이런 모던한 건물을 마주하자 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끔씩 느껴지는 21세기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21세기를 느낀 알베르게

낮 2시 무렵에는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이 알베르게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컴퓨터를 할 수 있었다.

2008년만 하더라도 알베르게에서 컴퓨터를 찾아보기란 어려웠다. 하물며 인터넷을 서비스하는 곳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조금씩 돌아가며 하다 보니 사용할 시간도 거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이 알베르게는 규모가 상당히 컸지만, 어쩌다보니 이 날의 순례자는 나를 포함하여 여섯 명뿐이었다. 덕분에 나는 컴퓨터를 차지하고 앉아서 카메라 메모리를 백업하고, 친구들에게 메일도 쓸 수 있었다.

씻고 정리하고 방에서 쉬다보니 갑자기 찾아온 친구가 있었다. 사람 손길에 익숙해서 그런지, 자꾸 와서 몸을 비비고 침대로 올라왔다.

별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애교를 부리며 다가오자 한참을 같이 놀아주었다.

특이하게도 오드아이였던 이 녀석은 알베르게에 머무는 사람마다 참견을 하러 오는 듯 했다. 겨우 이 고양이 한 마리가 알베르게의 분위기를 더 좋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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