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잡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 #8. 순례자 사무실과 첫 숙소

Ken. 2024. 6. 7.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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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5일 오후 조금 늦게,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의 출발점인 '생쟝드삐에드뽀흐'에 도착했다.

 

순례자들이 모이는 도시기 때문에, 기차에서도 백팩을 맨 사람들이면 대부분 순례자들이다.

 

그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대충 걸어가다보면 얼떨결에 도착하게 된다. 바로 '순례자 사무소'다.

 

순례자 사무소 - 39 Rue de la Citadelle

 

지금이야 구글 지도를 켜고 저 주소를 쳐서 따라가면 되지만, 2008년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이 갓 나올까 말까 하던 시점.

 

저곳에 가면 '순례자 기록증'이라 할 수 있는 크레덴시알(Credencial)을 발급받을 수 있다.

 

그냥 도톰한 종이로 되어 있는 것인데 여기에 아래처럼 도장을 받고 다닌다.

 

알베르게(Albergue)라 부르는 숙소에 도착하면 입실을 하며 도장을 찍고 날짜를 적어준다. 지나가는 길에 있는 성당 같은 곳에서도 종종 비치된 도장이 있어서 기념으로 찍고 가기도 한다.

 

크레덴시알은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한다.

1. 나중에 종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 옆 사무실에서 저 종이에 찍힌 도장과 날짜를 보고 최종 '순례자 인증서'를 준다. 출발지만 찍혀있다면 당연히 주지 않고, 어느 이상 걸었다는 기록이 있어야 인증서를 발급해 준다. 그래서 저 종이를 몇 년에 걸쳐서 가지고 다니며 완주하는 경우도 있다.

 

2. 순례길 상에 있는 대형 성당은 관광자원이라 입장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크레덴시알이 있으면, 순례자이므로 거의 무료로 입장시켜 준다. 성당 안에 특별전시 같은 경우만 제외한다면.

 

3. 순례자가 머무는 숙소인 알베르게 중에서도, 시나 협회가 운영하는 공식 알베르게의 입장권이 된다.

 

4. 순례길에 있는 식당들이 '순례자 메뉴'라는 걸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 똑같은 '정식'이 일반 관광객에겐 15유로라면, 순례자에게는 7유로 에 제공하는 식이다. 저 크레덴시알이 있으면 순례자 메뉴를 먹을 수 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2-30일 이상 걷는 사람들에게 비용적으로 상당히 큰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알베르게의 종류 - 공식과 사설

걸어다니는 동안 등을 붙이고 잘 곳은 있어야 한다. 그곳이 바로 알베르게다. 알베르게는 보통 오전 10시 정도까지 전날의 순례자들을 내보낸 뒤, 문을 닫고 청소를 한다. 그리고 2-3시쯤에 문을 열어서 다음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부상자나 몸이 안 좋을 경우엔 양해를 구하고 조금 더 지내기도 한다. 또는 자원봉사자가 되어 며칠씩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5시 무렵이었지만, 알베르게의 자리는 남아 있어서 배정을 받았다. 비용은 5유로 정도였다. (물론 2024년인 지금은 12유로 정도 한다고)

 

요즘에는 아마 리뷰를 보고 미리 알베르게를 염탐(?)해볼 수도 있겠지만, 2008년에 그런 게 없었다. 그저 알베르게에 대한 소문만 건너 들으며 접할 뿐이고, 하늘에 맡기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시설이 안좋은 곳은 순례자 사이에 이미 소문이 났기 때문에 사실 이상한 곳에 머문 적은 없었다.

 

이 길에서는 수 많은 알베르게를 만나게 되는데 크게 공식과 사설 두 가지로 나뉜다.

 

공식 숙소라고 하는 건 역사도 오래되고,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자원봉사자나 마을(정부기관)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새로 만들어진 곳 외에는 시설이 대단히 좋진 않다. 대신에 가격이 저렴하다. 정말 작은 마을에선 가격차이가 별로 없지만, 대도시에 진입하면 크게 난다.

 

2008년에는 공식 알베르게의 숙소비가 5유로를 넘지 않았다. 사설 알베르게는 약 8~15유로였고,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에는 20유로를 넘는 경우도 있었다.

 

공식 알베르게는 도장을 찍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보니, 숙소의 운영자가 체크인을 진행하며 도장을 찍어준다. 숙소는 선착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자리가 없으면 도장만 받고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가야 했다.

 

사설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일반 주민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동네의 작은 호텔이 남는 방을 알베르게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홈스테이처럼 자신의 집을 여는 경우도 있었다. 까미노 협회에 이야기를 해서 리스트가 등록된 곳도 있지만, 아닌 곳도 물론 있다. 시설이 좋은 대신 비싼 경우도 있고, 저녁 만찬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Saint Jean Pied de Port 의 알베르게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번째 숙소였던 알베르게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크레덴시알을 발급받고 '알베르게'를 문의하자 옆 테이블에 가서 5유로가량을 더 내고 종이를 받았다. 종이에는 숫자가 하나 적혀있었고, 저 위로 좀 가라는 말을 듣고 슬슬 걸어 나왔다.

 

그러자 저 사진과 같은 건물이 있었고, 사진 속의 할머니에게 종이를 보여주자 방을 안내해주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저 할머니가 아침식사로 빵과 음료를 준비해 주었다.

 

방은 2층 침대 3개가 놓여있는 좁은 도미토리였고, 나는 한쪽 2층 칸에 가방을 놓고 누울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할 예정이니, 여기서도 동네를 돌아보며 이곳저곳 구경을 했다.

 

 

알베르게의 바로 옆에 있는 이 입구가 바로 순례자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저 길로 프랑스에서 걸어온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마을에 집결한다.

 

이 길에 붙어있는 현판이 대략, 유네스코에서 지정된 문화유산이라는 1998년의 현판이다.

 

 

저 통로로 나가게 되면, 생쟝피에드뽀흐로 들어오는 초입을 구경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건물들을 보며 마을로 들어오게 된다. 아마도 몇 백 년 전에는 요새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입구를 통과하면 다음과 같은 마을 언덕길을 따라 계속 내리막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그 내리막길이 끝나면, 마을의 출구에 도달한다.

순례객들을 환송하듯 성모마리아 상이 서 있다.

 

정말 옛날 스타일로 시계탑이 있는 작은 마을이다. 아마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을 그런 동네다.

 

도도하게 흐르는 강도 있다. 이런 강은 종종 지나치게 되는데, 날씨가 좋을 때는 발을 담가서 식힐 수도 있다.

 

 

곳곳에 순례자의 상징들이 있는 이 길이 순례길이다.

 

괜히 이 가방들을 보며 나도 내일 출발한다는 사실에 두근거리기도 했다.

 

참고로 순례객의 상징인 가리비 껍데기는 2008년 당시에 공식 사무실에서 도네이션을 받고 판매했다. 저 날, 나는 남아있는 조금의 동전을 모아서 가리비 껍데기를 하나 얻고, 가방에 묶고 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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