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藝術

볼 만한 전시 - SUPERFLEX (2024. 6. 4 ~ 7. 28), 서울 국제 갤러리

Ken. 2024. 6. 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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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동의 국제갤러리에서 전시가 시작된 SUPERFLEX, 2024년 6월 4일부터 7월 28일까지 진행된다. 날씨도 좋고, 이 동네 산책을 하며 들려봐도 좋을만한 전시다.

 

SUPERFLEX - FISH & CHIPS

SUPERFLEX 수퍼플렉스?

덴마크 출신의 3인조 작가그룹인 슈퍼플렉스는 2019년 부산 국제 갤러리에서의 전시 이후 5년 만에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이 쫄쫄이 아저씨들이 수퍼플렉스!

 

수퍼플렉스는 1993년 야콥 펭거(Jakob Fenger),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Bjornstjerne Chiristiansen), 라스무스 닐슨(Rasmus Rosengren Nielsen)이 설립한 3인조 컬렉티브 그룹이다.

 

솔직히 컬렉티브 그룹이라는 말 자체도 난해하지만, 같은 지향점을 둔 예술가 집단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컬렉티브라는 말 자체가 '집단지성'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생각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의 생각이 모였을 때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면 되겠다.

 

주로 다루는 주제는 자본의 불균형, 이주 문제, 저작 문제, 소유의 문제 등이다. 이를 중심으로 세상의 불합리함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근원을 파헤친다.

 

자신들의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범세계적 담론에 대한 예술적 고민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이런 상호작용으로 통찰의 공유를 하고자 하는 예술의 지향점이 '컬렉티브'다.

 

가만 보면, 이들의 작품 의도는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며, 통찰을 유도하는 '트리거'가 되고 싶어 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슈퍼플렉스의 개인전은 다음과 같은 곳에서 이루어져 왔다.

- 2024, ICA 샌디에고

- 2023, 사우스 플로리다 현대 미술관

- 2022, 르 비콜로르

- 2021,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 2020, 투르쿠 미술관

- 2017, 테이트 모던

- 2013, 후멕스 현대미술재단

- 2009, 사우스 런던 갤러리

- 2005, 쿤스트할레 바젤

그 외에도 베니스 비엔날레(2024), 광주 비엔날레(2018, 2002), 샤르자 비엔날레(2017, 2013), 상파울루 비엔날레(2006) 등에 초대되었으며, 주요 작품 소장처는 덴마크 아르켄 현대미술관, 미국 워싱턴 D.C. 허쉬혼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뉴욕 현대미술관(MoMA), 마이애미 페레즈 아트 뮤지엄 등이다.

 

한국에는 2019년 한-덴마크 수교 60주년을 기념한 파주 도라산 전망대의 설치작품이 있다.

 

수퍼플렉스 '하나 둘 셋 스윙!' 그네, 도라전망대에 설치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우리는 남북한 경계의 한 지점에 위치한 도라전망대에 이를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하며, 이 작품이 전 세계를 연결하는 작업이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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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전시공간 K1

 전시공간 K1에는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Save Your Skin, Hold your Tongue, Make a Killing이라는 제목 그대로의 알루미늄 레터링이다.

Save Your Skin, LED Letters, Aluminum Structure

 

Hold Your Tongue, LED Letters
Make a Killing, LED Letters

각 레터링은 LED로 제작되어 있고, 핑크색 빛을 내뿜고 있다.

 

작품 설명에 따르면, 불안감과 위급함의 정서를 발산하는 강렬한 어조의 문구들이 다가오는 경제적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신호로 작용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언어와 시장 구조 이면에 자리한 인간 중심적인 욕망을 확대적으로 보여준다고 언급한다.

 

핑크색은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밝은 곳에서의 핑크색 조명은 유치해 보이지만, 어두운 곳에서의 핑크색 조명은 야해 보인다. 똑같은 조명이 주변 환경에 따라 반전이 생긴다.

 

이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도 어둡게 만든 이유도 이런 '욕망'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저 조명의 색이 파란색이라거나, 보라색이었다고 하더라도 저런 느낌을 강하게 줄 수 있었을까?

 

여러 매체를 통해 수십 년간 누적된 '네온사인'의 환락적인 이미지가 저 글씨와 함께 겹쳐서 다르게 읽힌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다. Save Your Skin이라는 단어가 해안가에 쓰여 있었다면 그저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라는 뜻으로 읽혔을 것이다. 근데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공간에 핑크 조명으로 같은 단어를 본다면 제 아무리 엄근진이라도 뭔가 야한 느낌이 든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

 

언어는 아주 강렬한 메시지 전달 매체다. 그래서 글자로 만들어진 미술품들은 관객들의 집중력을 배가시킨다. 장 미셸 바스키아 역시 이 점을 알고, 작품에 강조하고 싶은 데에 쓸데없이 글씨를 써두었다. 이 작품도 그런 느낌이다.

 

그다음 옆 전시실에는 다음과 같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아주 깨끗한 흰 그림이다.

Chips 4, Acrylic and silicon on Canvas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얀 캔버스들 뿐이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네모가 조금씩 보이는데, 이 작품의 콘셉트는 마이크로 칩의 모양을 그린 것이라 한다.

 

회랑 가운데에는 투자은행 화분이라는 작품도 있는데,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시티그룹 등의 세계적 투자은행 본사의 건물을 본뜬 화분을 만들고, 그 가운데 환각 독초를 심어둔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산 페드로 선인장, 마리화나 등을 심는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한국의 자생 독초인 '협죽도'를 심었다고 한다. 참고로 협죽도는 가지에 독성이 있어서 그 가지를 젓가락으로 사용하다 사람이 죽기도 했다.

 

이 하얀 네모그림과 화분을 결합하여 이 공간에서 보이고 싶었던 것은 '화폐와 금융시장'에 대한 비판적 사고였다고 한다. 사람들을 환각 시키는 투자은행과, 커뮤니케이션에 필수적으로 이용되는 마이크로칩(반도체 등)을 상징적으로 배치한 듯하다.

 

국제갤러리 전시공간 K3

계속해서 이어지는 K3 관에는 영상 인터랙티브 작품과 설치작품들이 있다.

 

이곳은 지구의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제작된 작품들을 설치하였는데, 수중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다.

Vertical Migration, LED Screen

전시관에 진입하면 인터랙티브 버전의 Vertical Migration의 뒷모습과 소리가 들린다.

Vertical Migration

버티컬 마이그레이션이라는 이 작품은 LED 스크린과 컴퓨터와 라즈베리파이, 센서 등으로 만들어낸 작품으로, 화면 가까이 가면 관람자에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수중 생명체인 '사이포노포어(Siphonophore)의 움직임을 묘사한 작품이다.

작가들의 메시지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인간도 이렇게 움직이는 미생물처럼 되어갈 거야"라고나 할까.

As Close As we get, Interface Painiting
As Close As we get

 

그리고 그 주변에는 As Close As We Get이라는 작품 연작과 Interface Painting이라는 연작들이 설치되어 있다.

 

천연석을 정밀하게 다듬은 이 As Close As We Get 작품들은 인간과 해양 생태계 모두의 생존을 지탱할 수 있는 해수면 아래 기반시설에 대한 관념적 상상이라고 한다.

 

상단에 설치된 붉은색의 Interface Painting 작품들은 어류가 서식하기 좋은 산호초 환경을 콘셉트로 만든 것으로, 인간과 해양 생물이 만나는 공간을 상상하며 구성되었다고 한다.

 

이 두 작품들은 해양생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공간 구조물을 제작한 것이라 보면 되겠다. 천연석을 다듬은 As Close As We get은 가까이서 보아도 상당히 깔끔한 마감을 보여준다. 바닷속에 던져놓았을 때, 실제로 해양생물이 살지는 의문이지만.

 

갤러리의 외부에도 스피커로 소리가 계속 흘러나온다. K3 전시실의 '해양생물'의 느낌을 살린 사운드가 계속 나오면서 감상을 이어가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국제갤러리의 전시도

 

참고로 국제갤러리의 K2에서는 칸디다 회퍼라는 작가의 작품 전시도 진행되고 있다.

 

국제갤러리의 매력 - K3관의 매력적인 외관

개인적으로 국제갤러리를 방문할 때마다 매력적으로 느끼게 되는 공간은 다름 아닌 K3 전시관이다.

 

국제갤러리를 방문해 보면 다들 느끼는 것이겠지만, K3관 건물 전체를 덮고 있는 체인아머가 굉장히 독특하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건물을 그물로 감싼 듯한 모습이 매우 신선하다.

 

한때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엄청난 유행을 한 적 있는데, 이 전시관 역시 마찬가지의 건물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체인으로 노출 콘크리트를 감싸면서 매력적인 도시건물로 재탄생했다.

 

 

 

 

현재 K3관에 진행되고 있는 슈퍼플렉스의 '해양생물 관련 작품'들의 경우에는 작가들 역시도 이 건물에 재미있게 반응했다고 한다.

 

이 건물에 대해서 수퍼플렉스 작가들은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를 내포한 거대한 어망처럼 보인다"라고 했다는데, 실제로 가서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스타킹을 뒤집어쓴 도둑의 얼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땅에서 솟아나려는 건물을 붙잡고 있는 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들의 상상력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붙잡아두는 장치 같아 보이기도 하고.

 

몇 달 전까지 진행했었던 '아니쉬 카푸어'의 전시도 이 공간에서 열렸다. 작품 해설을 함께 읽어본다면 이번 슈퍼플렉스의 전시가 이 공간에 잘 맞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수퍼플렉스의 전시 제목은 FISH & CHIPS다. 영국의 대표요리 제목이기도 하지만, 요리나 영국과는 크게 상관없다.

 

FISH는 정말로 수중생물을 상징하는 것이고, CHIPS는 정말로 마이크로칩을 상징한다.

 

2024년 6월의 볼만한 전시, 국제갤러리 슈퍼플렉스 전시다.

 

바로 옆 삼청동 MMCA와 함께 곁들여서 본다면 더욱 좋을 듯하다.

 

**참고로 사진 속의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슈퍼플렉스 작가 중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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