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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 #22. 알베르게가 다 친절한 것은 아니다.

Ken. 2024. 7. 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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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자길을 걷다 보면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순례자들에게 언제나 친절한 알베르게도 만난다. 물론 아주 가끔 불쾌한 경험도 한다. 불쾌함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끔은 그냥 이상한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늘 마주하는 '도라이'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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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디야(Boadilla)에서 프로미스타(Fromista)까지

약 5k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일정

 

이 날의 일정은 몸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정말 가볍게 걸었던 날이다. 한 시간 남짓을 걷고서, 빨리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길은 옛날 길이라, 이런 표지들이 있다. 왼쪽은 최근에 만들어진 표지고, 오른쪽은 예전에 만들어진 표지다.

 

양 쪽에 그려져 있는 조개의 모양이 달라서, 시기를 대충 구분할 수 있다.

 

프로미스타라는 동네는 보아디야의 바로 옆 동네다. 평소에 컨디션이 좋았다면, 금방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였지만 이 날은 천천히 걸으면서 구경을 하다 갔다.

 

산티아고 순례자길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들을 보며 마을 하나씩을 넘어간다.

 

두꺼운 토벽으로 만들어진 옛날 집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공간들. 이런 건물들을 보면서 다니다 보면, 비어있는 곳도 꽤 많았다. 특히 이 길을 걸었던 시기가 2008년 7월이었기 때문에,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많은 집들이 비어있기도 했다.

 

프로미스타에 도착한 뒤에는 우선 바에 가서 밥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산티아고 순례자길에서 가장 중요한 두 군데: 알베르게(Albergue)와 바(Bar)

산티아고 순례자길을 걷다 보면, 결국 이 두 군데의 신세를 가장 많이 지게 된다. 바로 알베르게와 바르다.

1. 순례자를 위한 쉼터이자 숙소 - 알베르게(Albergue)

산티아고 순례자길에서 가장 중요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알베르게다.

 

스페인어로는 사람의 숙박소를 이야기한다. 영어로 번역하는 경우에는 쉘터(Shelter)인 경우가 많다. '동물의 알베르게'라고 표현한다면 보통 '동굴'을 의미한다. 어감 상 알베르게는 호텔이나 여인숙의 개념보다는 '쉼터'와 같은 개념에 가깝다. 산티아고 순례자길에서는 순례자 숙소를 일컫는 단어지만, 사실상 '대피소'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래서 알베르게에는 침대와 샤워시설, 소박한 식사 정도가 제공되는 게 기본이고, 그 이상의 시설이 제공되는 경우는 최근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알베르게는 순례자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간단한 부상 치료도 가능하다. 지금은 병원이 훨씬 전문화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기능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몸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조금 더 쉬면서 머물게 해주는 경우도 많다. 

 

2. 스페인 사람들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바르(Bar)

순례자길을 걷다보면 '바(bar)'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스페인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있는 바의 존재를 알아가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자길은 대도시에 위치한 길이 아니다. 큰 도시를 빠져나가면, 그저 시골 마을들이 반복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순례자길을 걷다 보면 스페인의 시골마을의 어떤 일상이 있는지 알게 된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보통 '바(Bar)'는 마을 한가운데에 있다. 스페인어로는 'R'발음을 살려서 '바르'라고 읽지만, 바라고 불러도 지장은 없다. 이 바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술을 파는 곳이 맞다. 하지만 대도시에 있는 바처럼 저녁에만 여는 공간이 아니다.

 

스페인의 바르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동네의 터줏대감 역할을 한다. 아침에는 아침 뉴스를 보면서 가볍게 식사를 하고, 낮에는 커피와 음료를 마시며 쉬다가, 저녁에는 안주와 술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곳이다. 

 

순례자들도 마찬가지다. 걷다가 지쳤을 때 들어가서 음료를 마시거나, 밥을 먹기도 한다. 그날 일정이 끝났을 때에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바로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주인들이 직접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마다 메뉴가 다르고, 맛이 다르다. 그래서 스페인에는 가게마다 맛이 다른 안주들을 먹으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투어를 하는 경우도 많다.

 

알베르게와 바르, 이 두 군데가 편해지기 시작한다면 순례자길에 익숙해졌다고 볼 수 있겠다.

 

 

프로미스타(Fromista)에서의 식사와 불친절한 알베르게

프로미스타에 도착하자, 먼저 바에 앉아서 토르티야(Tortilla)와 빵, 그리고 초콜릿우유를 마셨다.

 

오늘은 일정을 미리 마무리 하는 날이라, 일행들이 마시던 술도 구경을 했다.

나도 이후에 잘 마셨던 음료인데, 세르베사 콘 리모나다(Cerveza con Limonada)다. 정식 명칭은 세르베사 라들레르(La cerveza Radler)로, 라들러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맥주에 레몬 주스를 섞은 음료다. 레모네이드를 섞기도 하고, 레몬즙을 넣기도 하면서 가게마다 레시피가 다르다. 한국에서 만든다면 생맥주에 사이다를 섞어서 마시면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알코올 도수는 낮지만, 청량감이 좋고 달달해서 여름에 마시기 딱 좋은 음료가 된다.

 

특히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을 맞으며 걷다가, 그늘에 앉아서 이 음료를 한 잔 마시면 온 몸이 리프레쉬되는 기분이다. 

 

식사를 마치고서는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이 날은 일찍 가서 여유있게 쉬고 싶었다.

 

알베르게의 주인은 나에게 1번방으로 가라고 안내하였다. 길을 걸으며 주워들은 스페인어로 1은 우노(Uno), 2는 도스(Dos)라는 정도는 알아듣기 시작했기 때문에 당연히 1번 방을 찾아갔지만, 곧 주인이 따라와서 2번이라면서 화를 냈다.

 

이럴 때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사실확인을 할 겨를도 없다. 그저 '내가 잘못했나?' 싶은 마음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방을 옮겼다. 그런데 조금 뒤에 또 다른 일이 터진다.

 

부엌을 사용하려고 보니 부엌 기물이 없는 상황. 그래서 가지고 다니던 전기포트로 물을 끓여서 계란을 삶아먹으려고 하자 주인이 와서 따지기 시작하였다. 스페인어를 모르니 답답한 상황이 계속된다.

 

내가 실수를 한 건가? 내가 잘못한 건가? 이런 생각이 계속 드는 와중에, 같은 숙소를 이용하던 폴란드 친구들도 주인장에게 욕을 먹기 시작한다. 남의 상황이라 편한 마음으로 이를 지켜보지만, 아무리 보아도 폴란드 친구들 실수가 아니다. 이쯤 되니 생각이 바뀐다. '아 내가 아니라, 저 주인이 좀 이상한 사람이구나'라고. 폴란드 친구들도 나에게 눈치로 서로 신경쓰지 말라는 안부를 전한다.

 

2008년 7월 7일 일기에는 주인에게 당한(?)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쓰여 있던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구글 지도로 그 동네를 검색해 보니 여전히 그 알베르게의 주인은 화가 많은가 보다. 수많은 사람들의 리뷰가 남겨져 있었다. 가끔은 문화차이로 인해 나도 모르는 실례를 범할 때가 있다. 그래도 이제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단 걸 알게 되어 좀 다행스럽다.

 

사실 10년이 더 넘은 지금 시점에 저 주인의 만행(?)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산티아고 순례자길에서 얻은 좋은 기억들 틈에 끼어들지도 못했다. 일기를 정리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일기에도 남겨둘 만큼 꽤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지금 내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 순간이었을 뿐이다.

 

사람은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한다. 부정적인 기억들은 그냥 그 자리에 두고 떠나오는 것이 맞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만나는 수 많은 사람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나쁜 사람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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